“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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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모짱 작성일18-07-09 08:12 조회277회 댓글0건본문

실밥이 뜯어진 운동화, 지퍼가 망가진 가방, 빛바랜 옷...... 종현이가 가진 것 중에 해지고 낡아도 창피하지 않은 것은 책과 영어사전뿐이었다.
종현이네 집안은 형편이 어려워 학원수강료를 내기 힘들어 수강료를 내지 않는 대신 각 교실마다 칠판 지우는 일을 하면서 부족한 과목의 수업을 들었다. 하루하루를 나날이 피곤에 찌들며 공부를 열심히 했다.
종현이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소아마비다. 하지만 종현이는 결코 움츠리지 않았다. 짧은 오른쪽 다리 때문에 뒤뚱뒤뚱 걸어다니며, 가을에 입던 홑 잠바를 한겨울에까지 입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종현이가 어릴 때, 종현이 아버지는 어린 자식들 앞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종현이 엄마를 때렸다. 겨울비 추적추적 내리던 날,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종현이 아버지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아주 추운 겨울이었다. 종현이는 책 살 돈이 필요해서 엄마가 생선 장사를 하는 시장으로 갔다. 몇 걸음 뒤에서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종현이는 더 이상 엄마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엄마는 낡은 목도리를 머리까지 친친 감고, 질척이는 시장 바닥의 좌판에 돌아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김치 하나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종현이는 눈물을 흘렸다. 종현이는 끝내 엄마를 부르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밤 졸음을 몇번이고 깰려고 책상에 머리를 부딪치며 하얗게 밤을 새웠다. 가엾은 엄마를 위해서......
종현이 엄마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두 아들을 키웠다. 종현이의 형은 뇌성마비 장애우였다. 형을 바라볼 때마다, 종현이 마음은 저릿저릿 아팠다.
종현이의 형은, 엄마가 장사를 하는 시장의 과일도매상에서 일했다. 손수레로 과일 상자를 나르는 일이었다. 엄마와 형을 생각하며 종현이는 열심히 공부했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이빨 같은 시간이, 종현이를 흔들어놓은 적도 있다. 아름다운 꽃이, 종현이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적도 있다.
시간이 흘러, 종현이는 수능시험을 치렀고, 그토록 바라던 서울대에 합격했다. 종현이는 합격통지서를 들고 엄마가 계신 시장으로 갔다.
그 날도 엄마는, 지나가는 사람들과 등을 돌리고 앉아,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종현이는 예전처럼 뒤돌아가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사뜻한 마음으로 엄마에게로 다가갔다.
따뜻한 국물도 없이 차가운 밥을 꾸역꾸역 드시는, 엄마의 가난한 어깨를 종현이는 뒤에서 힘껏 안아드렸다.
"엄마...... 엄마, 나 합격했어......" 울고 있는 종현이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엄마는 먹던 밥을 채 삼키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시장 길목에서, 엄마는 한참 동안 종현이를 안아주었다. 엄마의 낡은 옷자락이 바람을 타는 풀꽃처럼 흔들렸다. 엄마는, 그 날, 단골 손님들에게 돈도 받지 않고 생선을 모두 내주었다.
과일가게에서 일하는 종현이 형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종현이에게 달려왔다. 뇌성마비로 말 한 마디 제대로 할 수 없는 종현이의 형은, 과일상자를 나르는 손수레에 종현이를 태우고, 시장 사람들에게 종현이를 자랑하며 돌아다녔다. 새파랗게 얼어 있는 형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시장 한 구석에 있는 음식점에서 세 식구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쩔쩔 끓는 국밥을 앞에 두고, 종현이 엄마는 눈물만 흘렸다.
"니네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무척 기뻐하셨을 텐데...... 니들은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 누가 뭐래도 심성은 고우셨던 분이야...... 사업에 계속 실패하시고 그놈의 가난이 지겨워서 매일 그렇게 술만 드셨던 거야. 엄마를 때릴 만큼 몰강스러운 분은 아니셨다."
"에미로서 할 말은 아니다만, 몸이 성치 않은 자식을 둔 아비 심정이 오죽했겠냐. 얼마나 삶이 아팠으면 그리 허망하게 가셨겠어. 굽이굽이 북망산 넘어가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일은, 아침 일찍 아버지께 가자. 이 기쁜 소식을 알려 드려야지......"
종현이를 꿈꾸게 한 건, 엄마였다. 형이었다. 벌집 같은 가난이었다. 바람 부는 곳에 지어놓은 까치집은 바람을 견딜 수 있었다. 아픈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종현이는 어두운 창 밖을 바라보며 앙드레 말로의 말을 생각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아름다운 말을...... 어두운 차창 밖, 문실문실 자란 가로수가, 바람에 마른 손을 흔들며 훨훨 꽃나부춤을 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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